제목 : 셰르파의 산오름(1)

부제 : Sherpa, 그들은 누구인가

“셰르파는 힘과 자원 면에서 비대칭적인 게임에 참여하면서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를 가진 원정대의 관행과 규범들에 영향을 받는다. 동시에 이들은 게임의 룰을 무시하거나 변형시키면서 관계를 재구성해나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셰르파들은 더 나은 보수와 장비, 더 많은 존중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마침내 등반대원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 중에서>

 

 

근간 국내에서도 번역 발간된 이 책에서 저자 ‘셰리 B 오트너’는 셰르파에 대해 위와 같이 언급하였다. ‘셰르파’라는 말로서 연상되는 감상과는 거리를 두고 학술적인 접근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책은 서평에서 “인종, 계급, 젠더, 종교의 교차로로서 등반의 역사를 분석한 인류학의 고전”이라고 했다. 셰르파의 등장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통시적으로 다루며 분석적 담론을 담고 있음에도 굳이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서정적 표제를 달았다.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의 상징성으로 독자의 관심을 유인하려는 의도로 보이나 논점을 풀어가는 책의 성향에 어울리지는 않는 듯싶다.

 

서구인들에 의해 히말라야 고산등반이 시작되었고, 그 히말라야는 아시아에 있기에 인류가 산오름을 펼치는 역사의 장에서 동서양의 문화가 만났다. 그 중요한 매개는 셰르파였다. 등산도우미로서 셰르파들의 활동무대나 그들의 고향이 히말라야 산맥에서 어느 특정한 산이나 지역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셰르파라는 말은 으레 에베레스트와 묶여서 말해지며, 에베레스트 산은 흔히 히말라야 산맥을 대체하는 말로 사용된다. 실제로 상당수의 대중은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 그 둘을 구분하려 하지도 않는다. 종종 에베레스트는 어마무시한 히말라야의 대체어로 의미가 확장되어 말해지고는 한다.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표제는 이 같은 대중적 상식의 허실에 편승하여 그러한 현상을 더 심화시키는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셰르파의 삶’, ‘히말라야 산들에서의 삶과 죽음’이라는 표제로 해야 책에 담겨진 논제에 맞는다는 생각이다.

KBS 뉴스제보에서

 

셰리 B 오트너가 펴낸 ‘에베레스트에서의 삶과 죽음’은 서구인 중심으로 시작된 히말라야 등반역사에서 오랜 세월 조명 받지 못했던 행위자, 그들 셰르파의 삶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고산등반에서 그들이 기여한 공로나 등반사에서의 위상이 수의적으로 이룬 것이 아닐지라도 그 과정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고자 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 알프스에서 18C 태동한 알피니즘이 한창 무르익은 1910년경부터 서구인들은 더 크고 넓고 높은 산맥,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서 탐사와 등반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즈음부터 네팔의 여러 소수민족 중에서도 산간에 살던 셰르파 족이 인류 문화사에 등장하게 된다. 그보다 한 세기 쯤 더 이른 시기에 구르카(Gurkha)족이 산간 근거지를 지키려 영국군과 싸우며 전쟁사에 등장한다.

 

구르카 전사의 용맹함은 영국군과의 전쟁 내내 그들을 떨게 했고 겁먹게 하였으나 소수 산간족이 소위 대영제국과의 전쟁에 이길 수는 없었다. 영국은 그들의 전투력과 용맹을 높이 인정하며 자국군에 구르카 용병부대를 창설하였고 그 존재와 명성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셰르파족은 고산지대에서 누대를 살아 희박한 산소에 순화된 심폐기능으로 히말라야등반에 참여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몽골리안계에 속하며 히말라야 산간에 살던 구르카족과 셰르파족의 역사적 등장배경은 근본적으로 그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개 네팔 종족 중에서 두 소수산간 족이 세계 전쟁사와 등반사에 등장하게 된 것은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갑과 을의 관계로 시작된 것이다. 서구인들이 의도하는 전쟁의 목적이나 서구인들이 히말라야에서 펼치는 알피니즘의 실현, 사실 그 따위는 애초부터 두 종족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산간에서 자신들 삶의 방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높은 행복지수를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네팔사나이들 sherpa, 겨울철 K2 첫 등정

 

 

 

그들이 ‘전쟁’과 ‘고산등반’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정치적 이해득실’이나 ‘행위철학의 이념실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그들이 몇 푼의 돈을 받고 하는 그 일들은 생명의 안전을 담보해 주지도 않았다. 그들은 전쟁과 등산에 참여하여 몇 푼의 돈을 받는 생계수단이 생기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는 일을 갖게 되었다. 삶의 방식과 사고에 전이가 왔다. 서구인에게는 몇 푼의 돈일지라도 그들의 가족을 지탱함에는 큰 생계수단으로 작용했다. 전쟁과 등산으로 유명해진 두 종족은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종족사람이 죽음을 맞이했고 가족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필자는 ‘셰르파의 산오름’을 소재로 글을 시작하면서 지난 날 히말라야 등반에서 인연을 갖게 된 셰르파들을 떠올렸다. 그들과의 만남 그리고 동반자로서의 등반을 회상하며 셰르파의 의미를 다시금 새긴다. 필자가 가지는 불편한 심기는 그들 셰르파의 의미나 존재감이 세상에 잘못 알려져 있는 점이다. 셰르파에 대한 과장과 왜곡, 그들을 보는 관점이 실제와는 너무나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젊은 날 히말라야 등반에서 만났던 셰르파들과의 인연, 극한등반에서 나눈 우정 어린 생존기나 눈물겨운 에피소드는 뒤로 접어두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셰르파, 그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올바른 소개를 위한 의무감을 갖는다. 국내외 수십 개 넘는 사전들에서 셰르파를 바르게 뜻풀이한 것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셰르파=히말라야의 등반안내자, Guide로 묘사하는 것이 대표적 오류이다. 주요 포탈사이트가 제공하는 사전에도 ‘......who are famous for their skill as mountaineers.’라고 올라 있어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위키백과의 최근정보가 그나마 바르게 근접했는데 필자가 이를 수정 보완하였다.

세르파, 그들은 누구인가

 

 

『셰르파(티베트어: ཤར་བ་)는 네팔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소수종족이다. 티베트어로 'ཤར་(shar)'와 'བ་(pa)'는 각각 '동쪽'과 '사람'을 의미한다. 동쪽에서 온 사람을 의미하는데, 셰르파족이 약 500년 전에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고산지대로 이주해 살기 시작한 데서 유래하였다. 셰르파는 오랜 세월 여러 세대에 걸쳐 고산지대에 살아 왔기에 고소적응이 뛰어나다. 고산등반에서 베이스캠프 보다 높은 고도에서 주로 등반대의 짐꾼으로 일했다.』

National Geographic Image

 

 

트레킹 시대가 열리면서부터 셰르파는 트레커(만년설 보다 낮은 고도의 산악지대를 걸으며 풍광과 산간문화를 향유하는 경등산가)를 위한 길 안내와 짐꾼으로도 종사하고 있다. 셰르파는 티베트계열의 소수종족을 말하는 고유명사에서 점차 "등반 ‧ 트레킹을 돕는 사람들"이라는 보통명사로 의미가 전환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셰르파족 아닌 산간의 소수종족들 타망, 라이, 림부, 마가, 구릉족이 생업수단으로 등반 ‧ 트레킹 도우미에 가세하였다. 그들이 고유명사 셰르파족 아닌 등반 ‧ 트레킹 도우미로서의 보통명사 셰르파를 만들어가고 있다.

**[출처] 김 홍기의 '셰르파의 산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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